로벌 케이팝 센세이션을 일으킨 방탄소년단의 2015년 트랙 “Ma City”의 중반부에서 제이홉은 개인적인 오마주이자 역사 교훈이 담긴 “모두 062-518로 전화해”라는 가사를 랩으로 읊는다. 이 숫자는 그가 사랑하는 고향 광주에 대해 영리하게 표현한 것이다. 대한민국 광주의 지역번호는 062이며, 518은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 항쟁을 연상시킨다.

5월 18일로부터 일주일이 조금 지난 후, 전두환의 군사 쿠데타와 독재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수십만 명의 시민들에게 탱크와 헬기를 동원한 군경의 진압이 가해졌다. 정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이 잔인한 진압 작전으로 144명의 민간인이 사망했지만, 살아남은 목격자들은 실제 사망자 수가 2,000명을 넘어섰다고 주장한다. 수천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진압 경찰과 낙하산 부대원들의 무차별 구타, 강간, 토막 살해, 고문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이 국가에 의한 학살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항쟁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10년, 방탄소년단의 슈가는 용기 있는 희생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그 어두운 날’의 상처와 아픔을 ‘기억’하는데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힙합 트랙 ‘518-062’를 발표했다.

배여 진 몸에 상철 태극기로 채워

그대여 나 또한 당신의 의지를 불태워

형제여 상처 난 한국사를 끊임없이 외워

슈가는 이 곡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그 날의 봉기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조금씩 사라지지 않도록 하고, 다시 한 번 기억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27세 손자인 전우원 씨는 5.18 민주화 운동을 기억에서 지워버리지 않고 있다. 그의 최근 행보는 세대 간 책임과 고백이라는 성경적 실천과 오래되고 곪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공개 고백

뉴욕에서 회계사로 일하고 있는 전 씨는 지난 3월 31일 광주를 방문해 1980년 학살의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를 해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전 씨는 이날 감정이 북받친 듯한 표정으로 “너무 늦게 와서 진심으로 사과 드리고, 오래전에 해야 했을 일을 한 저를 기꺼이 환영해 주신 광주 시민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자신의 결점과 잘못됨에 대한 제스처는 취했지만, 2021년에 죽은 할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의 일원으로서 할아버지 전두환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죄인이자 학살자였음을 인정합니다.”라며 참회의 뜻을 표명했다.

전 씨는 764명의 희생자 묘역이 있는 광주 5.18 국립묘지에서 고인들의 넋을 기리는 것으로 참배를 마무리했다. 그는 “가족의 잘못을 평생 뉘우치고 후회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즉각적인 반응은 엇갈렸으나, 공개적인 참회의 제스처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주목할 만한 일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전우원은 1980년 학살에 대해 사과한 최초의 가족 구성원이다. “광주의 도살자”라는 별명을 가진 그의 할아버지는 2016년 한 잡지 인터뷰에서 “나는 광주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며 발포 명령 자체를 부인했다. 그는 90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반항적인 모습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전두환이 죽은 후에도 피해자들은 전두환 일가의 사과를 갈망했다. 최형호 5.18 기념재단 서울지부장은 “전두환의 가족이 희생자 묘역에 와서 무릎을 꿇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우원이 바로 그렇게 했다. 그는 말로만 사과한 것이 아니라, 학살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들 앞에 무릎을 꿇고 한국 문화에서 가장 깊고 격식 있는 겸손과 존경의 표현인 팔꿈치, 무릎, 이마를 포함한 몸의 다섯 지점이 모두 땅에 닿게 하는 큰절을 올렸다.

이 감동적인 순간을 담은 동영상은 전 세계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즉시 퍼져 나갔다. 일부는 전 씨의 개인적인 일탈과 무분별한 행동으로 인해 전 씨의 진정성과 동기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희망을 품었다. 한 사람은 트위터에 “눈물이 난다”고 댓글을 달았다. 또 다른 사람은 “정말 강력합니다. 정말 간단한 제스처입니다. 하지만 사과는 큰 힘이 됩니다.”라고 말했다.

킹스칼리지의 앤서니 브래들리 교수는 이 사건을 언급하며 “만약 1970년대 미국 백인 보수주의자들이 노예제도의 마스터클래스 후손들과 (모든 주에 있던) 짐 크로우 지지자들이 미국 전역의 지역사회에서 느헤미야 9:2의 행동을 실천했다면 오늘날 미국이 어떻게 됐을지 궁금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공개적인 사과는 치유와 회복을 가져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세대 간 고백의 힘이다.

책임감을 가지고

브래들리 교수가 인용한 느헤미야 9장은 성경에서 세대 간 고백의 두드러진 예를 보여준다. 예루살렘 본토로 돌아온 포로들은 굵은 베로 몸을 감싸고 얼굴에 흙을 묻힌 채 (아마도 큰절과 비슷한 문화적 유사성을 지닌) “그들의 죄”뿐만 아니라 “그들의 조상들의 죄악” (2절)도 큰 소리로 고백하기 위해 모였다. 그들은 먼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을 심판과 구속으로 다루신 역사를 되새기고(6-32절), 참회 기도를 통해 그 이야기 그리고 조상들과 자신들을 동일시 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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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는, 이라는 후회의 연대를 표현하는 인칭대명사를 통해 느헤미야 시대 사람들은 조상들의 죄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인정하는 성경 속 목소리의 합창에 동참한다. 시편 106:6은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라고 노래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애통해 한다(14:20).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예레미아 5:7)라고 애가 작가는 탄식한다. ”우리가 저지른 끔찍한 죄악”을 아파하는 광주에서의 한 손자의 목소리를 통해 이 고대의 합창이 다시 한 번 울려 퍼졌다.

이러한 광범위한 성경의 선례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전통에서는 전 씨의 사과가 상징적이고 정서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는 하지만, 죽은 조상의 죄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규범적인 관행이 되어야 한다는 제안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회의론은 두 가지 이유에서 간단하게나마 재고해 볼 가치가 있다.

첫 번째는 회의론자의 문화적인 관점과 관련이 있다. 미국과 같은 개인주의 문화와 달리 한국과 같은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사과의 사회적 기능과 의미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사회학자들은 오랫동안 지적해 왔다. 후자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을 타인과 연결된 존재로 여기고, 관계의 관점에서 자신을 정의하며, 손상된 관계를 회복하려는 열망의 표현으로 사과하는 경향이 있다. 전자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분리된 존재로 여기고, 개인의 특성과 선택에 따라 자신을 정의하며, 사과를 주로 개인적인 죄책감과 연관시키는 경향이 있다.

집단주의와 세대 간 문제를 접할 때 이 두 그룹은 느헤미야 9장과 같은 성경구절을 다르게 읽는 경향이 있다. 개인주의를 선호하는 집단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저지르지 않은 잘못에 대해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람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이것은 세대 간 고백에 대한 회의적인 두 번째 이유를 제시한다. 어떤 이들은 이 관행이 마치 다른 사람이 저지른 죄를 자기 개인이 저지른 것처럼 부당하게 처벌받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무효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개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대 간 고백은 개인의 죄책감을 다른 사람에게 무모하게 전가하는 것과는 다르다.. 선지자 에스겔은 유배를 통한 이스라엘 집단 심판의 공정성을 확언하면서도(에스겔 16-17장), 사람은 “그의 아버지의 죄악으로 죽지 아니하고”(에스겔 18:17, 예레미아 31:29-30)라고 분명히 단언한다. 개인의 과실은 집단적 책임과 구별된다.

광주에서 있었던 사죄는 전 씨가 할아버지의 만행에 대해, 마치 자신이 저지른 것처럼 개인적인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할아버지가 마땅히 해야 했지만, 절대 하지 않았던 회개, 즉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에스겔 18:13)를 대신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전 씨의 사죄는 사죄하는 사람(전우원)도 구성원인 집단(전씨 일가)의 한 구성원(전두환)의 죄에 대한 집단적 책임을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능적이든 학습에 의한 것이든, 기독교인인 전 씨는 할아버지의 악행에 개인적으로 책임이 없더라도 자신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는 “가족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지고 있다.

치유의 길

이 집단적, 세대 간 책임에는 어떠한 것이 수반될까? 과거의 피해를 단순히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쳐야 할 의무가 있다.

구약학자 마이클 로즈는 희년을 중요한 예로 들었다(레위기 25-26장). 때로는 죄성으로 혹은 강압적 방법으로 다른 가족으로부터 토지를 취득한 이스라엘 가족은 50년마다 원래 소유주에게 토지를 반환해야 했다. “한 세대가 저지른 피해가 당대에 바로 잡히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단순히 그들이 죽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잘못된 일은 반드시 바로 잡혀져야 하며, 그 일은 후손에게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라고 로즈는 설명한다.

이 성경의 원리는 전두환의 후손에게도 적용된다: 그들은 그것을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고쳐야 한다. 그들은 전우원처럼 “자기의 죄악과 그들의 조상의 죄악을 자복”(레위기 26:40)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죄값을 치러야”(레위기 26:43, 새번역)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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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광주 시민들에게 어떤 보상을 할 수 있을까? 회개와 치유, 이웃 사랑의 상징으로 어떤 것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이는 전 씨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의견을 수렴해 스스로 결정할 문제다. 하지만 그는 이미 어떤 특정한 대책을 염두에 둔 것처럼 보인다. 행사 후 기자회견에서 전 씨는 유가족들과 “필요한 만큼”, “계속 접촉”하고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마도 그 대화에는 수습 방안의 가능성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치유의 과정은 전 씨의 사과로만 시작된 것은 아니다. 지난 40년 동안 지역 및 국가 차원에서 진상 규명, 형사 기소, 추모, 정부 개혁 등의 노력을 통해 진행되어 왔다. 여기에는 물질적 배상도 포함되었다. 1990년부터 학살의 일차적 책임이 있는 정부는 사망자, 실종자 가족 그리고 부상자들에 대한 배상을 제공하는 광주 보상법을 포함한 일련의 조치를 통과시켰다. 2009년 한 통계에 따르면, 총 5,185건의 케이스가 다뤄졌고, 2,330억 원(약 2억 2,000만 달러)이 피해자들에게 지급되었으며, 1인당 평균 4,500만 원(39,000달러)의 보상금이 지급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과도기적 정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피해자에 대한 배상이 사회 치유의 필수 요소라고 주장할 것이다. 구약의 율법도 이에 동의하는 듯하다. 그러나 39,000달러는 항쟁 진압하는 과정에서 군인들에 의해 저질러진 살인, 잔혹 행위, 강간과 성폭행 등 실제 피해의 전체 규모를 고려할 때 그렇게 크지 않은 금액이다.

배상은 치유와 화해,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한정된 배상금은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돌이킬 수 없는 곤경’ 이라고 부른, 이미 행해진 일을 되돌릴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무능력과 함께 손실의 엄청난 규모만 더욱 부각해 준다.

그 어떠한 배상도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 없으며, 광주에서 보여준 선의의 눈물을 감정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학자이자 아르메니아 대학살 생존자의 후손인 아니 칼라이지안은 “세대를 초월한 용서는 한 번의 사과와 그 수용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용서는 집단적 책임감과 고백과 마찬가지로 성경의 명령이다(마태복음 6:14-15; 누가복음 17:3,4; 에베소서 4:32). 그것은 억압적 복수의 유대로부터 상호 해방을 가져온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복잡하기도 하다. 죄로 얼룩진 세상에서 용서는 쉽지 않다. 더 나아가, 용서는 길고 힘든 과정을 포함하는데, 특히 세대가 지나도록 연기되거나, 참회하지 않거나, 국가의 잔혹함으로 죽은 가해자들을 포함할 때 더욱 그렇다.

광주 학살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과 생존자들은 광주에서 전우원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수십 년 전 대학생 자녀들을 잃은 노모들을 포함한 유족 중 일부는 눈물을 흘리며 전우원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어떤 분들은 그의 용기를 칭찬하며 그를 안아주었다. 항쟁에서 아들을 잃은 한 여성은 전 씨가 “광주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러한 가시적인 선의의 제스처를 용서로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원 가해자인 전두환이 손자 때문에 용서받았다는 의미인지는 더더욱 불확실하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너그러운 반응은 그날 이후 수십 년간 이어온 비통함과 슬픔의 안개를 걷고 일종의 빚으로부터의 해방, 복수로부터의 자유가 찾아왔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그것도 일종의 치유이다. 그것 역시 기억할 가치가 있는 유산이다.

듀크 권은 ‘배상:회개와 회복으로의 기독교적 부르심’의 공동 저자이자, 그레이스 DC 네트워크의 이웃 교회인 그레이스 메리디안 힐 교회의 담임목사이다. 그는 워싱턴 DC에서 아내, 세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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