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방콕에서의 대학 사역 초기 9년 동안, 난타차이와 우볼완 메주돈 부부는 노란 책자를 들고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태국 학생들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사영리에 대해 들어보셨나요?’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들은 크루(Cru, CCC를 부르는 말)의 전도 전략을 따르며 학생들에게 하나님의 사랑, 인간의 죄, 예수님의 죽음,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하는 필요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불편한 대화를 피하고자 예수님을 받아들이겠다고 예의상 동의했고, 놀랍지 않게 많은 ‘개종자’들은 곧바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었습니다.

서구에서 공부하면서 그리스도를 만난 메주돈 부부에게 방콕에서의 서구식 전도 방식의 결과는 실망을 안겼고, 그들이 선한 의도로 한 일이 거의 결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도전은 태국 선교 역사에서 흔한 일입니다. 동남아시아 국가인 태국은 종교의 자유, 접근성, 낮은 물가 등으로 인해 선교사들이 많이 찾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인구의 93%가 불교도인 나라에서 기독교 전파는 더디게 진행됐습니다. 200년 가까운 개신교 선교의 결과, 태국의 기독교인은 1%에 불과합니다.

시리즈의 지난 기사에서, 시드니의 태국-중국계 호주인인 세이지는 ‘태국에서는 복음이 다른 지역에서처럼 뿌리내리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태국 사람들에게 더 나은 접근 방법이 있는지 알아봅니다.

메주돈 부부는 지난 50년 동안,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방콕 캠퍼스에서 일하고 태국 북부 시골 마을에서 사역하면서, 그들은 태국인의 감성에 맞는 전도 형태, 즉 온유함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초기 전도 시도가 실패한 후, 메주돈 부부는 진정한 우정을 쌓고, 불교가 스며든 태국 문화를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며, 태국인들에게 맞서기보다는 신앙의 유익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변증론이나 신학적 발표를 통해 태국인들을 설득하려 하기보다는, 관계를 통해 복음이 스며들게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10에서 20배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23년 동안 메주돈은 태국에 오는 선교사들에게 온유함을 통해 전도하는 자신들의 사역 방식을 가르쳐왔습니다. 방콕에 있는 므앙타이 교회에서 집중 세미나를 통해, 난타차이와 우볼완(현재 79세와 77세)은 400명의 선교사를 훈련했습니다.

난타차이의 1997년 논문에서 그는 그들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태국 문화와 성경적 접근법의 조합은 현재 서구 문화와 신학적 접근법의 조합보다 태국인들에게 더 실용적입니다.’

불교에서 기독교로의 여정

메주돈 부부는 독실한 불교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젊은 불교 남성들처럼, 방콕 출신의 난타차이는 18세에 석 달 동안 불교 승려로 생활했습니다. 동부 태국 촌부리 출신의 우볼완은 대학에서 불교 철학을 공부하고 가르쳤습니다.

1970년, 태국 정부는 두 학자를 해외로 유학 보내기로 했습니다. 난타차이는 캘리포니아로 공학을 공부하러 갔고, 당시 그의 약혼자였던 우볼완은 뉴질랜드로 영어를 공부하러 갔습니다. 우볼완은 뉴질랜드에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장거리 연애를 하며 불교와 기독교 신학을 논의하는 700통의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난타차이는 그녀가 불교로 돌아오도록 설득하려 했습니다(이 편지 중 일부는 나중에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마침내 난타차이는 신이 없다고 선언하기 전에 스스로 연구가 필요하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는 서점에 가기 위해 2.5마일을 걸어가 성경을 한 권 구입했고, 매일 10시간씩 성경을 읽고 공부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성경이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으며,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은 후 그리스도께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972년 난타차이와 우불완은 방콕에서 대학생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서구 선교사들이 태국 학생들에게 천국과 지옥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 메시지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태국인들은 미래보다 현재를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난타차이는 ‘태국에서 종교는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그리스도께서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람’이라는 점을 전달하는 것이 더 공감을 얻는다고 설명했습니다.

1990년대, 난타차이와 우볼완은 애즈베리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다시 해외로 나갔고, 둘 다 태국에서의 선교에서 온유함의 중요성에 대한 논문을 썼습니다. 그들의 논문이 출판된 후, 태국의 여러 기독교 단체들이 그 논문을 구입했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 자신의 교회에서 선교사들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을지어다’

메주돈 부부는 전도를 통해 태국 문화를 존중하려는 한 가지 방법으로 개개인이 아닌 가족 전체와 소통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태국인이 기독교인이 되면 부모는 다른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을 태국 정체성의 거부로 받아들여 가족 간의 갈등을 초래합니다. 이것은 새신자들에게 큰 긴장과 고립의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메주돈 부부는 학생들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부모와도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하면 선교사들이 가족 구성원을 ‘훔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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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돈 부부는 새로운 기독교인에게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세례를 받기 위해 가족의 허락을 받도록 항상 지도합니다.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면 학생들에게 부모의 뜻을 따르고 세례를 일시적으로 연기하도록 합니다. 메주돈 부부는 학생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보여줌으로써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지켜봅니다. 기다림의 기간이 지난 후에도 부모가 여전히 허락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 아이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세례식 동안 교회는 부모를 초대해 자녀에게 성경책을 선물하도록 하여 의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부모를 존중합니다. 부모가 불교 신자일지라도 자녀가 믿는 바에 충실하도록 가르치라고 권장합니다.

‘새신자들의 가족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불교 가족의 반응을 결정할 것입니다.’라고 난타차이는 말했습니다.

서구의 시각에서 ‘온유함’이라는 단어는 약함이나 우유부단함을 의미하지만, 메주돈 부부는 그것을 부드럽고, 겸손하고, 사려 깊고, 친절한 사람을 묘사하는 데 사용합니다. 예수님은 온유하셨고, 온유함은 성령의 열매라고 난타차이는 지적했습니다.

온유한 정신으로 태국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서구 선교사들은 사고방식과 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태국에 도착했을 때 많은 개종자를 기대하는 대신, 난타차이는 선교를 아무 조건 없이 진정한 관계를 구축하는 장기적인 헌신으로 보아야 한다고 권합니다. 태국 공동체에서 살고 우정을 쌓음으로써 외국인 선교사들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를 천천히 쌓아갈 수 있습니다.

‘많은 선교사가 신자의 수를 세고 교회나 조직에 구원받은 사람의 수를 보고해야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난타차이는 그의 논문에 썼습니다. 하지만 신약성경에는 ‘당신의 교회에 교인이 몇 명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불교적 신념을 기독교로 이어주는 디딤돌로 사용하기

사람들이 가진 세계관을 이해하려면 선교사들은 먼저 불교를 이해해야 한다고 메주돈 부부는 말합니다.

많은 선교사가 태국어를 공부했지만, 불교나 태국 문화를 깊게 공부하지 않아서 관계 구축을 건너뛰고 결과에 집중하며 태국인의 가치관을 무시하는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난타차이는 말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신앙을 나눌 때 선교사와 태국 기독교인은 불교의 긍정적인 측면을 연구하고 존중하며, 부처라고도 알려진 고타마 싯다르타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참된 불교의 특정 측면이 하나님의 진리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궁극적인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창조하셨기에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통해 선교사들은 ‘그들의 믿음 체계에서 잘못된 생각을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신앙에 대한 고집을 공감하며, 더 많은 이해를 구하는 데 인내와 친절과 이해심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라고 난타차이는 그의 논문에서 주장했습니다.

태국인들은 종교의 실질적인 결과에 관심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불교가 인간의 필요와 행동에 초점을 맞추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의 목적과 제공에 초점을 맞춥니다. 재난이나 위기가 발생하면 불교 신자들은 종종 스스로를 벗어나 도움을 찾아 절에 가거나 다른 방법을 찾게 됩니다.

이런 때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이 공급자이며 희망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부드럽게 소개할 수 있는 이상적인 시기라고 난타차이는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불교가 제공할 수 없는 영적 능력과 개인적인 관계를 제공합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스스로 감당할 수 없다고 느끼고 외부의 도움이 필요할 때 기독교는 좋은 소식을 전합니다.’라고 난타차이는 썼습니다. ‘기독교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에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당깁니다.’

태국 시골 지역에 복음의 씨앗 심기

논문을 마친 후 메주돈 부부는 온유함을 통한 증거가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태국 북동부의 로이엣주의 작은 마을로 이주했습니다. 14년 동안 그들은 현지 학교에서 가르치며 학생들과 그 가족들의 삶에 투자했습니다.

교사는 태국 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교사의 위치를 통해 마을 사람들의 삶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의 부모와 친분을 쌓고, 그들의 집을 방문하며, 쌀을 심고 수확하는 것을 도우며,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었습니다.

메주돈 부부는 학교 직원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로이엣에서 사역하던 동안 100명의 학생이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일부 가족들도 예수님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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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제가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고, 돌보고, 그들의 사회적 복지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라고 난타차이는 말했습니다. ‘당신의 임무는 그들을 기독교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방법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관계가 충분히 깊어졌을 때, 당신은 원하는 것을 공유할 수 있으며, 그들은 당신의 말을 듣고 기독교인이 될 것입니다.’

동시에 새신자들이 신앙에 계속 충실하게 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기독교가 그들에게 원하는 것이나 필요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기독교를 떠나는 것이 쉽습니다.’라고 난타차이는 말했습니다. 불교와 기독교 모두에서 ‘믿기 쉬우면 버리기 쉽다’는 사고방식이 맞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난타차이는 태국 사람들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복음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과 정신에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부부는 마을에 교회를 설립하고 2014년에 떠날 때 지역 사람들에게 교회를 맡겼습니다. 현재 그들은 태국 남부의 라농에서 또 다른 교회를 설립하고 집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북부와 비교했을 때, 현지인들은 기독교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어렵지만, 일단 믿게 되면 평생 예수님을 따릅니다. 라농에서 처음으로 가르친 여섯 명의 학생 모두가 기독교인이 되었고 현재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로이엣 출신의 학생 중 버마인이지만 태국에서 태어난 엑스 무 코는 부부의 전도 덕분에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현재 고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엑스 무 코는 3학년때부터 메주돈 부부를 알고 지냈습니다.

메주돈 부부는 다른 교사들과 달리 그녀와 다른 학생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엑스 무 코가 말했습니다.

‘그들은 잘 들었고 훌륭한 상담가였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들은 절대 우리를 비판하거나 꾸짖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저와 친구들을 이해하고 적응하려고 노력했어요.’

부부는 그녀에게 신앙을 강요하지 않았고, 관계 덕분에 그녀는 일요일마다 난타차이의 설교를 듣고 싶어 했다고 말했습니다.

‘난타차이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었을 때, 우리는 그에게 계속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왜나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에서 이익을 얻기 때문입니다.’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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