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26-38

권능의 추상적인 개념은 지진과 천둥 혹은 대통령들과 억만장자들을 떠올리게 할 지도 모릅니다. 살아있는 권력은 우리의 길을 막기도 하고, 그것을 휘두르는 사람이나 그가 제기한 안건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권능을 태와 연관시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복중에는 어둠 속에 감춰져 있고, 보이지 않으며, 상상할 수조차 없는 진정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아름다운 역설 중 하나를 접합니다. 성령은 이 여성의 태 안에 작은 남자 아기 즉 그녀의 살과 뼈 가운데, 그녀의 첫 번째 아기 한 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아기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 즉 하나님의 아들에 다름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마리아의 아들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인간입니까? 신입니까? 예! 한 존재인 이 남자 아기에게는 둘 다 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구원을 가져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있고, 혁명적인 일을 하는 영웅적인 인간을 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의 고귀함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동시에 완전한 신이자 완전한 인간인 한 존재가 가능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역설, 즉 인간 구원의 중심에 있는 역설입니다.

이 권능은 다른 모든 정의에서 추출할 수 있는 맨손의 무한한 힘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를 입은 영원하고 영광스럽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입니다. 그분의 권능은 인간과의 신성한 연대에서 오는 약함의 형태를 취하며, 그분의 거룩한 사랑이 이 모든 것을 이끕니다.

천사는 마리아와 우리에게 공히 영광스러운 사건을 선포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서 온전한 인성을 얻으셔서 죄가 없으신 것 외에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이 되셨습니다(히브리서 4:15). 그러나 마리아의 아들은 마리아보다 먼저 존재했습니다. 이는 니케아 신경이 선언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본성을 가지신 아들은 성부로부터 성령을 통해 오시며, 결코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기를 그치지 않으시지만, 진정으로 자신이 아니었던 존재 즉 겸비한 인간 피조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십니다.

레오 1세(400-461)는 자신의 편지에서 그 아들의 성육신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그가 하신 일은 신성의 축소가 아니라 인성의 고양이다. 보이지 않는 분이 자신을 보이게 드러내시고, 만물의 창조주요 주이신 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도록 선택된 것 즉 자신을 비우심은 능력의 실패가 아니라 자비에 훨씬 가깝다.”

마리아의 태에서 자신의 “왕국은 결코 끝나지 않을” 구세주 왕이 오셨습니다. 우리도 마리아가 “주의 여종”이라 반응했던 것처럼, 사람이 되어 그 안에 거하심으로 자신의 피조물을 충분히 사랑하시고, 이 땅에 새로운 생명을 가져오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꺼이 신뢰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의 온전한 신성과 온전한 인성이 그의 권능을 선포하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켈리 M. 캐픽(Kelly M. Kapic) Covenant College의 신학자이며, Embodied HopeYou’re Only Human 등 여러 책의 저자 또는 편집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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